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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용납되지 못한 원술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 일화] 삼국시대

처음에 법민왕이 고구려 반군의 무리를 받아들이고 또한 백제의 옛 땅을 차지하여 소유하였다. 당 고종은 크게 노하여 군사를 파견하여 그들을 치게 하였다..... 


당병이 말갈과 함께 우리 군사가 아직 진을 치지 못한 틈을 타서 공격해오자 우리 군사가 대패하여 장군 효천, 의문 등이 여기서 죽었다.

(원술이 이동한 무이령은 서흥과 개성 사이의 어느 곳으로 추정됨, 무이령蕪荑嶺)



유신의 아들 원술이 비장으로서 역시 나아가 전사하려고 하니, 그의 보좌관 담릉이 만류하여 말하기를,


"대장부는 죽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을 경우를 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죽어서 성과를 얻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살아서 뒷날의 공적을 도모하느니만 못하다."


하니 원술이 대답하였다. "남아는 구차하게 살지 않는 법이거늘 장차 무슨 면목으로 우리 아버지를 뵙겠는가?" 그는 곧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가려 하였으나, 담릉이 말고삐를 붙잡고 놓지 않는 바람에 마침내 죽지 못하고 상장군을 따라 무이령으로 나왔다..... 


거열주 대감 아진함 일길간이 상장군에게 말했다.


"공들은 힘을 다하여 빨리 가라! 내 나이 벌써 70이니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는가? 오늘이 내가 죽을 날이다."


그가 창을 비껴들고 진중으로 달려들어 전사하자 그의 아들도 따라서 죽었다. 대장군 등이 다른 사람들 모르게 서울로 들어 왔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유신에게 물었다. "군사가 이렇게 패하였으니 어찌하랴?" 유신이 대답하였다.


"당인들의 모략을 예측할 수 없사오니 장졸들이 제각기 요충지대를 지키게 해야 합니다. 다만 원술은 왕명을 욕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훈까지도 저버렸으니 목을 베어야 합니다."


대왕이 말했다. "원술 비장에게만 유독 중형을 줄 수 없다." 그리고 원술의 죄를 용서하였다.


원술이 부끄럽고 두려워서 감히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전원에 은둔하다가 아버지가 죽은 뒤에야 어머니를 만나려 하였다. 어머니는


"부인에게는 삼종의 의리가 있다. 이제 내가 과부가 되었으니 응당 아들을 좇아야 하겠으나 원술과 같은 자는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아들 노릇을 못하였으니 내가 어찌 그의 어미가 될 수 있겠느냐?"


라 말하고 만나보지 않았다..... 원술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담릉 때문에 그르친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하고 곧 태백산으로 들어갔다.


을해년에 당병이 와서 매소천성을 치니 원술이 이 소문을 듣고 이 기회에 죽음으로써 전일의 치욕을 씻고자 드디어 힘껏 싸워서 공을 세우고 상을 받았으나, 부모에게 용납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벼슬을 하지 않고 일생을 마쳤다. 


삼국사기 제43 열전 김유신 전

김유신의 아들 원술에 대한 일화입니다. 


처음 원술이 담릉을 뿌리치고 죽었다면 신라사에 크게 남을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담릉의 제재를 받았고 거기에 일길간과 그의 아들이 죽으면서까지 두 사람을 구해버렸으니 일이 꼬여도 한참 꼬여 버린 셈이 됩니다.


나중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상을 받았지만, 부모에게 용납되지 못했다 하여 벼슬도 안 하며 일생을 바친 것으로 봐선 매우 곧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런 인물이 좌절을 맛봤으니 그 어떤 인물보다도 좌절감은 더 컸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ps. 꿀물이 먹고 싶다던 꿀물 황제와 음만 같습니다.


출처 : http://decentliar.tistory.com/27



덧글

  • 미군철수 홍그리버드 2017/04/20 12:42 # 답글

    채명신도 자살하려다 옆에 있는 부하가 말려 살았다지요. 미군철수 자주화를 이루려면 이런 군인들이 많아야 합니다.
  • 요원009 2017/04/20 12:58 #

    채명신 이야긴 처음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 NRPU 2017/04/20 19:50 # 답글

    꿀물 드립치려고 했는데 이 무슨....ㅠㅜ
  • 요원009 2017/04/21 08:16 #

    데헷... 그거슨 나의 몫
  • 원한의 거리 2017/04/23 18:56 # 답글

    1.
    제가 아는 신라사 연구하는 모 박사님은 이를 두고 김유신에 대해서 최소한 부끄러움은 아는 사람이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은 모두 전쟁터에 보내 죽게 만들고서 최소한 그들의 영정 앞에서 부끄럼움을 느끼고... 부성애를 억누른채 오히려 살아돌아온 아들을 꾸짖은 사람이라는 평이었지요. 한국사에서 이런 지도자가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생각해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김유신 본인이 출세하게 된 계기도 낭비성에서 고구려군과 싸울 때 거의 자살공격에 가까운 무모한 전공을 세웠기 때문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이런 처절함이야말로 신라가 고구려, 백제가 모두 망하는 와중에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2.
    이런 것을 보면 은근히 연개소문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은 당나라의 계필하력에게 참패해서 수많은 병사들을 잃고 돌아왔는데, 몇년 후에 연개소문이 죽자 멀쩡히 아버지의 지위를 세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뭐 연개소문이나 김유신의 입장을 일대일로 대응하기가 좀 어려울지는 몰라도 꽤 재미있는 점이지요.
  • 요원009 2017/04/23 21:53 #

    처음 접하는 이야기네요. 되게 재밌어요. 일단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1. 이걸 읽고 보니 삼국지 강의 읍참마속편이 생각나네요. 제갈량이 강력한 법 집행으로 형주 세력을 대표하는 촉한의 정치인으로 마속을 베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이야기죠. 요립 등의 촉 땅 전통 귀족 세력을 억누를 때 법 집행을 냉정히 했으니, 마속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 죽였다는 것입니다.

    2. 아마 원술이 장남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까요? 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엔 없지만, 장남 차남의 차이가 꽤 크다는 걸 고려하면 이 점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음.... 김유신 이야기는 정말 감사합니다. 되게 신선하고 재밌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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