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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항로, 환상의 적벽 [만화가가 그린 적벽대전] 삼국시대 위촉오

소설 삼국지연의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한 인터뷰를 위해 보내져 온 한국 독자의 창천항로 평을 읽고 조금 놀랐다. 연의라고 하는 허구의 이야기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들어보면 일본도 같은 경향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연의라고 하는 세례를 받지 않은 나에게도 이 연의의 환상은 여러 번 나타나 성가신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마도 삼국지에 대해 쓰인 대부분 글이 이 환상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환상의 정도가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일막이 적벽대전이다.


유비와 손권 측의 관계자로부터 천하의 대전이라 이야기되는 이 전투. 정사의 본문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선주(유비)에서는, 단지 55단어, 연의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는 공명에 이르러서는 曹公敗於赤壁引軍歸鄴(조공패어적벽인군귀업 : 조공이 적벽에서 패하여 군사를 이끌고 업으로 귀환하다). 이것뿐, 공명이 무엇을 했는가 등은 전혀 기록되어있지 않다.



정사의 저자 진수의 사가가 지녀야 할 능력을 묻고 싶어지지만, 쓰여 있지 않으니깐 내 마음대로 그리겠다. 그게 내 스타일이며, 연의의 원조인 과거 군담 이야기꾼들의 스타일도 그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공명 편의 입장에 서서 당연하게 발발,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이 전쟁.


조조 측에서 생각해보면 어째서 여기서 전쟁이 되는 거냐!?는 말이 나오게 된다. 도무지 필연성이 보이지 않는다. 조조가 형주에 진공 해 강릉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이 해의 남정 목적은 달성되었다. 그때까지의 조조 군의 군사 내력에 비춰보면, 강남 공격은 훗날 몇 년에 거쳐 이루어져야 했다.


여기서 드디어 조조의 교만함이 드러났다고 하는 견해로부터는 아무런 상상력도 샘솟지 않는 데다, 조조라고 하는 인물의 고찰에도 연결되지 않는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이 전쟁의 일대 기점은 조조의 협박문이다.


이 협박문, 정사正史 본문에도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고, 강표전이라 하는 손오를 찬양한 자료에 실려 있을 뿐, 이 사료 자체가 상당히 창작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며 수상쩍은 것이나, 이 협박문에 이르러서는 진수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심한 내용이다.


1. 수군 80만...

정말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 허풍.


2. 칙명을 받들어 죄인을 토벌키 위해...

조정에서 유표를 토벌할 이유가 없다.


3. 오의 땅에서...

208년 당시 손권의 위치는 장강 중류 지역으로 하류의 오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전장이 될 까닭이 없다.

조조의 북방통일 서기 208년. 오른쪽 아래 한글을 읽으시라.

(출처 : guoxue 닷컴)


그러나 이 협박문이 발해진 시점과 적벽에서의 충돌과의 시공간의 타이밍이 어긋나 있으며, 아귀가 맞지 않는다. (창천항로 253장에서 가후에게 논회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이 협박문이 없으면 왜 손오가 조조에 대항키 위해 장강을 거슬러 올라갔는가가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그런 까닭에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받지 못한 서간이 내용은 어떻든 일단 그러한 것이 존재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여겨져, 역사 연구가 사이에서도 상세히 언급되는 일 없이 오늘날까지 적벽대전이라 전해져온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 연구가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사료의 발견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곳도, 발칙한 만화가에게는 솜씨를 발휘할 장소가 된다. 수상쩍기 그지없는 협박문... 이 서간의 존재를 나의 사적인 역사의 흐름에 띄워내는 것에서부터 창천과 적벽을 시작하고 싶다.


창천항로 22권, 마지막 작가의 말


위의 그림은 서기 208년 조조가 북방을 통일할 당시의 형세도입니다. 원본 그림에 제가 약간의 편집을 했습니다. 편집한 부분은 오른쪽 아래로, 적벽대전 당시 손권의 중심부를 표시했습니다. 그 아래에 삼오 일대를 추가로 표시해뒀는데, 오군을 포함한 삼오 일대는 동진 이래 남조의 중심부로 위상이 높아지는 지역입니다.


[참조 - 삼오 일대에 대해서]


손권도 오군을 포함한 인근을 개발했으나, 오군이 실질적인 중국 남조의 중심부로 주목 받은 것은 동진 시기입니다. 아무래도 강표전은 동진 시기에 지어져 후대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되는바, 남조의 중심이자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른 삼오가 손권 시기에도 위상이 똑같았으리라 추측한 것은 아닐까요.


결정적으로, 손권 시기엔 호족의 힘이 너무 강해 오군을 중앙 정부에서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손권이 임명한 오군 태수 하소를 오군 호족들이 회계의 닭이라며 비아냥대며 욕하기 일쑤였거든요. 그러자 하소도 화가 나 오군 사람들 모두를 죽여버리겠다며 분노를 표출했었습니다.


[참조 - 하소를 무시하던 오군 호족들]


이렇듯, 오의 땅은 삼국이 정립된 이후에도 손권이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이런 곳이 전쟁의 중심부가 될 리는 만무하죠.

삼국지연의 적벽대전

(출처 : 三国演义之赤壁大战)


수군 80만, 칙명을 받든 토벌전, 오의 땅, 이 세 가지는 강표전의 신뢰도를 크게 낮추는 근거가 됩니다.


그렇지만, 작가분도 지적하셨듯, 이러한 계기가 없었다면 적벽에서 치러진 전투를 설명하기 곤란합니다. 조조 측 입장에선 기습을 받은 이유가 불분명합니다. 손권이 기습한 필연성이 없으니 말이죠. 그렇기에 허구에 가득 찬 이런 기록도 쉽게 넘길 순 없나 봅니다.


결론을 내려보자면, 조조가 보냈던 협박문은 존재하나 강표전에 실린 것처럼 허황된 내용은 아니었을 겁니다.


노숙은 항복하면 신하들은 조조에게 중용 받겠으나 주군(손권)은 그렇지 못한다며 결전을 다짐하라는 발언도 했었던바, 분명 협박문은 존재했을 겁니다. 그 내용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요.


조조는 괜히 벌집을 건드려 기습을 받고 퇴각한 셈입니다. 조조가 화를 불러들인 것으로 봐야겠죠. 협박문을 보내 손권 진영이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기습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창천항로 24권 나레이션을 소개하며 포스트를 마칩니다.


뒷날, 적벽대전이라 불리는 건안 13년(208년)말에 불과 2개월이 채 못 되는 전투는 그 전쟁의 경위 대부분이 명확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하의 세 가지 점에 있어 중국 역사상 극히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 손권의 조조에 대한 반기.

2. 조조의 패배와 퇴각.

3. 유비의 형주 4군 접수.


즉, 삼국정립의 시대의 막이 열린 것이다.



덧글

  • 남두비겁성 2017/05/18 15:45 # 답글

    형주에 자리를 잡고 그저 째려보고만 있어도 뭉치지 않는 강남 세력 특성상 모든 게 조조 뜻대로였을텐데...
  • 요원009 2017/05/18 18:25 #

    원상, 원희 끝낼 때 처럼 기다렸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분이 일어나 알아서 망하게 놔뒀으면 어땠을지...
  • ㅁㄴㅇㄹ 2017/05/18 20:12 # 삭제 답글

    실제로 조조가 무리수 두다 조지고 퇴각했다 정도는 인정할만한 사실로 봐야 하는데 창천항로는 너무 미화하긴 했죠... 그 작품의 조조는 인간을 벗어나 접신한 경지에 가까우니 뭐...
  • 요원009 2017/05/18 20:15 #

    컨셉 자체가 조조 띄우기라 객관성은 많이 잃었다고 봐야죠.

    그냥 재미 자체만 따졌을 땐.... 재밌어요 ㅎ
  • 無碍子 2017/05/18 21:56 # 답글

    '조정에서 유표를 토벌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遂不供職貢,郊祀天地,居處服用,僭擬乘輿焉。유표는 황제에게 세금을 보내지 않고 천지에 제사를 지냈으며 의장을 황제처럼했습니다. 죽여야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 명림어수 2017/05/19 01:38 # 삭제 답글

    진수도 지금이나 유명하지 당시에는 외국 (정확히는 반란군 점령지역) 출신의 말단 월급쟁이에 불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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