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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시기의 황당한 일화들 서진남북조


장면 1. 왜 고기로 죽을 쑤어 먹지 않는 것인가?


291년 진무제의 아들로 "백치 황제"로 불린 진혜제 사마충이 거대한 용상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대신들은 밖에서 빚어지고 있는 화난을 앞다퉈 보고했다. 당시 수많은 백성이 먹을 양식이 없어 굶어 죽었다. 사마충이 커다란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같이 물었다.


"먹을 양식이 없으면 왜 고기로 죽을 쑤어 먹지 않는 것인가?"


(그러나, 실제로 고기로 죽을 쑤어 먹는 일이 발생했으니....)

팔왕의 난에 따른 후유증이 극심했던 311년의 어느 날, 갈족의 우두머리 석륵이 이끄는 군대가 영평성에서 인간 사냥을 했다. 난을 피해 황급히 도주했던 서진의 왕공과 사대부를 포함해 일반 백성 10여만 명이 도살됐다.


그다음 날 흉노 부장 유연이 이끄는 군사가 사방에 불을 놓아 요행히 죽음을 면한 20만 명의 서진 군민을 모두 산 채로 불에 태운 뒤 그 고기를 먹었다.


[참조 - 동진에서도 논란이었던 사마충 vs 사마유 [클릭]]

[참조 - 서진남북조10.흉노의 한나라에 멸망한 통일 왕조 진晉. 영가의난[클릭]]

사마충과 유선, 오히려 유선이 더 바보 같이 그려졌다


장면 2. 오랑캐를 죽여라

349년, 과거에 석호(후조의 건국자) 휘하에 있던 대장 염민(염위라 불리는 위나라를 건국자)과 이농은 갈족이 반기를 들자 이른바 살호령을 내렸다.



하루 사이에 업성의 봉양문 밖 광장에 수만 명에 달하는 갈족의 머리가 산처럼 쌓였다. 며칠 동안 살호령에 의해 목숨을 잃은 갈족의 수가 20여만 명에 달했다. 이는 그동안 이뤄졌던 한족 군민에 대한 탄압의 반동으로 인한 것이었다.


※ 당시만 해도 호한 융합의 시도가 소극적이었고, 되려 한족을 지배하는 5호들은 한족을 핍박했었습니다(호한분치分治).


그 핍박이 얼마나 심했던지 당시엔 눈이 깊숙이 패이거나 눈동자가 조금이라도 푸르면 마구 베었기에 억울하게 죽은 한족의 머리도 상당히 많았으리라 추측이 됩니다.


[참조 - 만화 번역, 염민과 모용선비 [클릭]]


장면 3. 자... 이제 날 따라 하는 거야.

420년 여름, 동진의 공제가 선양의 조서를 내리면서 보위를 유유에게 넘겨 남조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1년여 뒤 유유가 보낸 병사들이 흔쾌히 보위를 넘겨준 뒤 연금 상태로 있으면서 염불을 외던 공제의 집 담장을 넘어들어가 그를 독살했다. 이후 남조의 마지막 황제는 모두 그의 전철을 밟았다.


※ 이전 왕조 씨 말리기 대작전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나니... 아아...


[참조 - 서진남북조48.동진 북벌군 궤멸. 유유는 보위에 올라 송나라를 건립 (동진 멸망)]


장면 4. 악녀의 최후

528년, 음탕한 데다 표독한 심성을 지닌 북위의 호태후가 갈족의 지족인 계호의 우두머리 이주영 앞으로 끌려왔다. 호태후가 구구히 변명하자 이주영이 도중에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좌우에 명해 호태후와 3세의 어린 황제를 모두 황하에 내던지게 했다.


북중국을 통일했던 북위는 이내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 효명제가 남긴 딸을 아들로 뻥쳤다가 나중에 증손자를 데려와 황제로 앉혔으나... 결국엔 둘 다 사망....


[참조 - 서진남북조66.북위 곳곳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반란. 아들 효명제를 독살한 호태후]


불교를 사랑했기에 호태후가 주제인 그림들도 대게는 불교풍


장면 5. 젊은 시절의 영리함은 어디 가고....

549년 여름, 건강성을 지키던 군민 가운데 10여만 명이 죽은 뒤 대장 후경이 입성했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86세의 양무제는 승냥이를 안방으로 불러들인 것을 후회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당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 차례 불렀으나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연이어 '허허!'를 연발하다 한을 품고 죽었다.


※ 제나라 황손으로 문무를 겸비하며 영특함을 자랑했던 그가 말년엔 태자와 함께 엉뚱한 짓만 하더니 나라까지 망쳤음.

이 당시의 '허허'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논란도 많았지만 대게는, "꿀물이 먹고 싶다"라고 했음에도 아무도 가져다주지 않았기에 "먹고 싶어서 쩝쩝"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음.


[참조 - 서진남북조76.건강성을 함락시킨 후경. 양무제의 아사]


장면 6. 가짜일 가능성이 높은 일화

589년, 수나라는 대장만 1백 명, 군사는 52만 명에 달하는 군대를 이끌고 진왕 양광의 지휘 하에 건강성을 향해 돌진했다.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나라의 시인 황제 진숙보는 총애하는 두 명의 비빈과 함께 우물 속에 몸을 숨겼다가 이내 포로로 잡혔다.


이로써 천하가 다시 하나로 통일됐다.


※ 진숙보가 무능하긴 했어도 폭군은 아니었고, 성인 남녀 3명이 우물 속에 몸을 숨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이미 6세기부터 흘러나왔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의자왕의 3천 궁녀 일화처럼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 좁은 곳에 3명이 어떻게 들어가....


[참조 - 서진남북조93.수문제 양견의 천하통일 [完]]


삼국지 그다음 이야기 1권, 신동준


ps. 유유가 공제를 죽인 것으로 선양의 미덕은 끊어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출처 : http://decentliar.tistory.com/



덧글

  • 남두비겁성 2017/05/29 14:31 # 답글

    마리 앙뜨와네뜨 일화는 그짓뿌렁임이 확실한 일화인데 사마충은 친절하게도 사가가 적어주셨으니 (...)
  • 집더하기 2017/05/29 15:44 # 삭제 답글

    시씨 가문을 생각하면 전조 황제 죽이는건 남북조만의 특징일듯 하네요
    조광의도 이욱을 죽이긴 했지만 시씨는 살려두지 않았습니까?
  • 존다리안 2017/05/29 16:34 # 답글

    사마씨들은 인격이 나빠도 천재고, 몇몇은 능력자에 인품마저 훌륭했다는데 그 후손이라는 놈이 왜 저모양일까요?
  • 공손연 2017/05/29 19:46 # 삭제

    사마충이 백치인것은 괜찮은데 문제는 멀쩡한 아들냅두고 황태자로 삼았다는거죠. 사마씨들의 통치가 정통성이 결여되고 패권주의하나뿐이라 극도의 측근정치를 할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가충의 난행으로 이어지는 사리로 따지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 토투가 2017/05/30 09:30 # 답글

    이거말고 염민이 구출했던 한족성노예소녀5만명이 다시 염민이 전사하면서 선비족의 군량미로 쓰였단 얘기도 있지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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