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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에 담긴 고려와 송나라 이야기 고려시대

열하일기(熱河日記序) 중 동란섭필편(銅蘭涉筆)


1. 우리와 함께 즐기세~

우리나라가 동파(東坡, 소식(자는 동파))에게는 가장 잘못 보였던 모양이다.


(소식)가 항주杭州 통판通判으로 있을 때, 고려의 조공 사신이 주군州郡의 관리를 능멸凌蔑하고, 당시 사신을 인도하는 관리들이 모두 관고(管庫 창고의 관리(管理))로서 세도를 믿고 제 맘대로 날뛰어 예절을 지키지 않았다 하여, 사람을 시켜 이르기를,


"먼 지방 사람들이 중국을 사모하여 오니 반드시 공손하여야 할 터인데, 지금 보니 이렇게도 방자하니 이는 너희들(송나라 관리)이 잘못 지도한 것이라, 만일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마땅히 황제께 아뢰리라."


하니, 인도하던 관리들이 두려워서 수그러졌다.

 

※ 소동파에 대해서 - 위키백과 소식[클릭]


남송의 명신 소동파

(출처 : LISHUI NEWS)


2. 송나라 연호 쓰면 요나라 눈치가 보이는데....

고려 사신은 폐백을 관리에게 보내면서 편지 끝에 날짜를 갑자甲子만을 썼더니, 동파는 이를 물리치면서,


"고려가 우리 조정에 신하로 자칭하면서 연호를 쓰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감히 받겠는가."


하니, 사신은 글을 바꾸어 ‘희령(熙寧)’이라 쓰자, 그제야 체례體禮에 맞았다 하고 받았으니, 이것은 동파의 묘지墓誌에 실렸다.


※ 희령熙寧은 송나라 신종神宗의 연호


3. 요나라냐... 송나라냐... ... 아 몰랑~ 둘 다.


원우元祐 5년(1090년) 2월 17일에 왕백호王伯虎 병炳을 만났더니 그는 말하기를,


"옛날에 추밀원樞密院 예방禮房 검상문자檢詳文字로 있을 때 비로소 고려 공안高麗公案을 보았는데, 처음에 장성일張誠一이 거란 이야기를 하면서 거란의 군막 속에 고려 사람이 있어 자기 나라 임금이 중국을 사모하고 있다는 뜻을 말하더라고 하는 말을 듣고 돌아와 이를 황제에게 아뢰었더니, 황제는 이 말을 듣고 비로소 고려 사신을 불러 볼 뜻을 갖게 되었다.


추밀사樞密使 이공필李公弼이 뜻에 맞추어 친필로 문서를 황제에게 올려 고려 사신을 부르자고 청하여, 드디어 발운사發運使 최극崔極에게 명령하여 상인을 보내어 부르게 했다."


그냥 어쩌다... 만난 것인가.... 거란 군막에서 거란 말로 중국 황제를 사모한다고 말했다? 고려 장성일의 송나라 능욕이 맞는 듯.


명필이었던 추밀사 이공필

(출처 : 360백과)


4. 요나라가 무서운건지, 송나라가 만만한 것인지


"회동제거淮東提擧 황실黃實의 말로는 고려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의 이야기로서, 보낸 선물 중에는 가짜 금은金銀 알이 있었는데, 고려인들은 모조리 깨뜨려 알맹이까지 쪼개 보니 사신들은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이때 고려 사람들은,


‘감히 우리가 오만한 것이 아니라, 혹시 거란 사람들이 보고 진짜로 여길까 봐 걱정스러워서 그러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것으로 본다면, 고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보낸 선물을 거란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이 일을 상세히 알지 못하고는 말하기를, 거란이 고려가 우리에게 내통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고, 더러는 다른 기회에 고려로서 거란을 견제할 수 있다고 하는 자도 있으니, 이 어찌 틀린 것이 아니랴."


5. 귀하신 고려 사신 - 1

소동파가 고려를 미워하는 것은 까닭이 있다.

당시에 고려는 오로지 거란을 섬기고 있었는데, 특히 중국을 사모할 뜻으로 때로는 송의 조정을 찾았다. 중국 선비들은 고려의 충정衷情을 알뜰히 보아 주지 않고 혹은 조정을 정탐하지나 않는가 의심한 것은 전혀 괴이할 것이 없다.

 

또 그 조공하는 길이 명주明州로부터 하륙下陸하여 반드시 유신儒臣으로 관반館伴이 있어, 그 막대한 비용은 요의 사신에 다음가고 있다. 국가와의 외교도 아니요 속번屬藩도 아닌데, 강한 하夏를 접대하는 것보다 더 많으니 당시 사대부들이 무익無益하다고 말한 것도 마땅한 일이다.


거란 사신의 모습

(출처 : 바이두백과)


고려 사신 밥 먹이기 부담스럽다는 기록입니다. 받는 것 보다 주는 게 더 많으니 무익하다는 의견.

열하일기熱河日記序 중 피서록避暑錄


6. 시도 잘 쓰는 고려 사신 박인량

송宋의 원풍(元豊 송나라 신종(神宗) 때의 연호) 연간에 고려 사신 박인량이 명주明州에 이르렀을 때, 상산위象山尉 장중張中이 시로써 전송하였더니, 박인량의 답시答詩 서문에,


‘꽃 같은 얼굴이 곱게 불을 부니 이웃 여인의 푸른 입술이 움직임을 부끄럽게 하고, 상간桑間의 야비한 소리로써 영인郢人의 백설白雪 곡조를 잇노라.’


는 글이 있었습니다.


언관言官이 낮은 벼슬에 있는 장중이 사사로 외국의 사신을 교제함은 부당한 일이라 하여 탄핵했습니다.


신종神宗이 좌우에게 ‘푸른 입술’이란 어떠한 고사인가 하고 물었으나, 대답하는 자 없어 조원로趙元老에게 물었더니, 원로가 아뢰기를,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어떤 이가 본즉 이웃집 사내가 그 아내의 불 부는 것을 보고,


불 부는 예쁜 맵시 붉은 입술 오물오물 / 吹火朱唇動

섶나무 때고 나니 하얀 팔뚝 드러났네 / 添薪玉腕斜

멀리서 보아하니 연기 가린 저 얼굴이 / 遙看煙裏面

피는 것이 꽃이런가 안개 더욱 은은해라 / 恰似霧中花


는 시를 읊었답니다.


그 아내가 그의 남편에게 하는 말이, 당신도 어찌 그를 본받지 않느냐고 하였을 때, 남편은 대답하기를, 당신이 먼저 불을 불면 내 응당 본떠서 시를 지으리라 하고, 이내 읊되,


불 부는 님의 양은 푸른 입술 벌렁벌렁 / 吹火靑唇動

장작을 때고 나니 검정 팔뚝 비꼈구나 / 添薪墨腕斜

멀리서 보아하니 연기 가린 그 상판은 / 遙看煙裏面

무엇에 비할 쏜 고 구반다(추악한 귀신의 이름)가 이 아니냐 / 恰似鳩槃茶


라고 하였었는데, 이 이야기는 본래는 왕벽지王闢之의 민수연담록澠水燕談錄에서 나왔다 하였습니다.”


한다.


박인량의 묘비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출처 : 경남 문화재정보시스템)


7. 너희 조상이 쓴 시야

강희때 간행한 전당시全唐詩는 모두 1백 20권이나 되는 거질이었으니, 마땅히 빠진 것이 없을 것이로되 당 현종唐玄宗의 어제사신라경덕왕御製賜新羅景德王이라는 5언 10운韻의 시가 그 속에 실리지 않았다. 삼국사三國史에,


"신라 경덕왕景德王 15년 봄 2월에 경덕왕은 당 현종이 촉蜀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당의 절강으로부터 성도成都에 이르러서 공물貢物을 바쳤더니, 조서詔書로 말하기를, 신라왕이 해마다 조공을 바쳐서 능히 예악禮樂과 명분名分을 지키는 것을 가상하게 여겨 시 한 수를 지어준다 하고,


넷 벼리 나누어서 밝은 햇빛 나타나고 / 四維分景緯

여러 가지 기상들이 그 속에 포함되네 / 萬象含中樞

구슬과 피륙들은 온 천하에 깔렸고 / 玉帛遍天下

다리 놓고 배를 저어 우리나라 찾아드네 /梯航歸上都


아득한 이내 회포 푸른 뭍이 막혔더니 / 緬懷阻靑陸

오랜 세월 흐르도록 우리 위해 수고했소 / 歲月勤黃圖

망망한 하늘가를 그즈음 누가 알꼬 / 漫漫窮地際

창창한 그 어란이 바다 구석 자리 잡아 / 蒼蒼連海隅


갸륵한 이 나라는 명분을 지켰다네 / 興言名義國

산천이 멀다 하여 허수로이 생각하랴 / 豈謂山河殊

우리 사신 갔을 땐 풍속 교화 전해 있고 / 使去傳風敎

그들이 이에 오면 옛 법을 배워 가네 / 人來習典謨


옷 갓이 정제하니 예식을 알아 하고 / 衣冠知奉禮

충실하고 믿음 지켜 유학을 높였구나 / 忠信識尊儒

어린 정성 나타나니 하느님이 하감하고 / 誠矣天其鑒

어질도다 그의 덕은 외롭진 않으리라 / 賢哉德不孤


깃발 안고 함께 일어 인민을 기르리니 / 擁旄同作牧

아름다운 이 선물은 생추에 비할쏘냐 / 厚貺比生蒭

임이 가진 푸른 뜻을 한층 더 굳게 하여 / 益重靑靑志

바람서리 치더라도 어디까지 변치 마오 / 風霜恒不渝


라고 하였다."


한다.

송宋의 선화宣和 연간에 고려의 사신 김부의金富儀가 이 시의 각본刻本을 가지고 관반館伴으로 있던 학사學士 이병李邴에게 보였더니, 이병이 황제 휘종 황제徽宗皇帝에게 올렸는데 이내 양부兩府와 모든 학사에게 보이고, 황제는 또,


"이 진봉시랑(進封侍郞)이 올린 시는 당 명황(唐明皇)의 글씨가 틀림없는 것이야."


하고 가탄하여 마지않았다.


이 시가 이미 중국에 들어가서 도군(道君 송(宋) 휘종이 자칭한 별호)의 예상睿賞을 겪었으나, 후세 사람이 당시唐詩를 엮는 이는 모두 이를 수록하지 않았음을 보아서, 비로소 옛날의 잃어버린 글은 듣고 본 것으로서만이 다할 바가 못 되고, 도리어 해외 편방偏邦의 선비가 이따금 천유闡幽의 업적이 있음을 깨달았으니, 이 어찌 우리들의 다행이 아니리요.


※ 딱히 송나라와 고려의 에피소드는 아닌데 어쨌든 둘 다 언급되니..


8. 얼른 처리합시다. 뭘 질질 끌어요?

석림시화石林詩話 섭몽득葉蒙得 저著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었다.


고려가 태종조太宗朝로부터 오랫동안 조공을 바치지 않더니, 원풍元豐 초년에 이르러서 비로소 사신을 보내어 조회하매 신종神宗이 장성일張誠一을 관반館伴으로 삼고는, 그에게 다시 조회하는 뜻을 물었더니, 그는 답하기를,


‘우리나라가 거란과 더불어 이웃이 되었더니 그들의 주구誅求에 견디지 못한

국왕國王 왕휘(王徽, 문종(文宗))는 늘 화엄경華嚴經을 외어 중국이

재생하기를 빌었는데, 하룻저녁 꿈에 별안간 이 경사에 몸이 이르러서 성읍과

궁실의 번영함을 샅샅이 구경하고 꿈을 깨자, 이곳을 연모하여 즉시로 시를 읊으셨는데,


악한 인연 어이하여 거란에게 이웃 되어 / 惡業因緣近契丹

한 해에 바친 공물 몇 가지나 괴롭혔네 / 一年朝貢幾多般

이 몸에 날개 돋쳐 먼 중국에 왔건마는 / 移身忽到中華裏

애달파라 깊은 대궐 누수 소리 날 새려네 / 可惜深宮滴漏殘


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9. 귀하신 고려 사신 - 2 (근데, 소동파가 오바한거 아님?)


송宋 원풍元豐 7년(1084년)에 경동京東 회남淮南 고을에 조서를 내려 고려高麗 정관亭館을 세우게 하였으므로 밀密ㆍ해海 두 고을에 시소時騷가 일어 백성이 도망한 자가 있었다.


그 이듬해에 소식(蘇軾, 소동파)이 그곳을 지나다가 제도의 웅장 화려함에 감탄하여 시 한 수를 읊었으되,


처마 끝 높이 솟아 담장 밖에 나르는 듯 / 簷楹飛舞垣墻外

농가 숲은 쓸쓸하여 도끼 자취 뿐이구나 / 桑柘蕭條斤斧餘

오랑캐의 종으로서 다 내주고 보니 / 盡賜昆耶作奴婢

나 몰라라 그들에게 얻은 것이 무에런고 / 不知償得此人無


하였으며, 동파東坡가 고려를 미워함이 이르는 곳마다 이러하니, 만일 그가 강희康熙가 세운 33참站의 찰원察院(조선 사신의 내왕을 위해 설치한 숙소)을 보았던들, 그는 또 무어라 하였겠는가.


- 끝 -


당시 동아시아는 송 - 요의 2파전이었습니다. 고려는 비록 두 나라보다 약한 국가이긴 했으나 함부로 넘볼 수 있는 국가도 아니었죠. 만만해 보이나 절대 만만하지 않은 국가랄까요?


공교롭게도 당시 고려는 약 100년간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소재로 딱! 좋은 현종부터 무신정변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시기와 맞물렸지요. 아무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고려 사신의 패기나 호구 송나라라는 글은 잘못됐습니다.


출처 : http://decentliar.tistory.com/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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