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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진 할거 4기와 후한 말기의 간단한 비교 [당나라 말기의 번진 할거] 수당시기

조정에 대항하며 토황제(군벌軍閥,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치적 특권을 장악한 무장 집단)로 군림한 번진세력. 일각에서는 당나라 말기까지 지속한 이들 번진세력의 할거양상을 크게 네 시기로 나누고 있다.


제1기 763~805년 : 번진세력의 형성기로 대종 초기의 광덕 연간에서 덕종 말기의 정원 말년까지.

제2기 806~822년 : 번진세력의 극성기로 순종 영정 원년에서 헌종 원화 말년까지.

제3기 822~872년 : 번진세력의 교체기로 덕종 초기에서 의종 말년까지.

제4기 874~907년 : 번진세력의 내홍기로 희종 건부 연간에서 당나라가 패망할 때까지.


출처 - 오대십국지, 신동준, 학오재, 14p


당나라 대종 이예당나라 대종 이예


당나라 순종 이송당나라 순종 이송


당나라 덕종 이괄당나라 덕종 이괄


당나라 희종 이환당나라 희종 이환



907년엔 주전충이 당나라 경종에게 선양을 받아 공식적으로 당이 멸망한 해이지만, 당 말기는 후한 말기와도 비슷한 상황이라 안사의 난이 발발한 755년이나 안사의 난이 끝난 763년을 기점으로 번진 시대라 불러도 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후한 말기와 당 말기는 분명히 다른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에 대해선 나무 위키의 절도사 항목을 요약하여 인용합니다.


1. 후한은 군웅들의 할거를 막지 못했고, 애초에 시도 자체를 하지 못했다.

-> 당나라는 절도사들을 제어하려 시도도 했으며, 일부 성공한 사례도 존재. 할거한 세력을 대한 두 왕조의 말기는 분명히 다름.


2. 위, 촉, 오가 대립하던 삼국 시대엔 한의 정통성을 계승한 왕조의 건설이 정치적 과제였다.

-> 오대십국 시대는 제국의 영향 범위 축소 -> 외곽 지역의 독립 -> 제국의 왕조 교체 -> 신왕조에 의한 영향 범위 재확장. 통일 왕조의 개념이 판이함. 통일 왕조의 중심부인 관중 일대는 다섯 번이나 왕조가 교체되었지만, 정치 구조는 단일하게 유지 됨.


풍도가 다섯 왕조를 거치며 11명의 황제를 만날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이러한 당시 정치 / 시대적 특징이 있었기 때문.


오대십국 풍도오대십국 풍도


3. 후한이 사실상 멸망한 시점부터 중국의 중심은 낙양과 장안 일대였다. 제갈량이 북벌을 감행한 이유도 중원을 수복하여 한의 정통성을 이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 촉, 오 이외에 분열된 세력은 없었다.

-> 후량의 주전충은 중국의 중심을 개봉으로 옮기지만, 다른 번진들이 중국의 중심을 수복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의지는 없었다. 오히려 북송이 건국된 이후에도 세력을 유지하며 절도사로 책봉 받던 귀의군절도사가 존재했다.


국호를 제정하지 않고 칭제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질적인 독립 왕국이나 다름없었다. 후한 말기와는 다르게 분열의 양상이 더 복잡했다.


이렇게 보건대, 번진 할거 4기를 모두 살펴보아도 후한 말기와는 상황이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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